‘박사방’ 조주빈 징역 42년 확정… ‘범죄단체조직’ 인정한 대법 판결 의의는

‘박사방’ 운영한 조주빈 상고 기각… 42년형 확정
디지털 성범죄에 범죄단체조직 혐의 첫 인정 사례
법조계 “조직적 온라인 성착취 엄벌 근거 될 것”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텔레그램 n번방’의 일종인 ‘박사방’을 운영하며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주빈(26)에게 대법원이 징역 42년의 중형을 확정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범죄단체조직 혐의가 인정되고 확정된 첫 사례인 만큼 조직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앞으로의 판결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조주빈 42년형 확정… 핵심 연루자들도 7~13년형 확정

 

14일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과 범죄단체조직, 살인예비, 유사강간,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조주빈의 상고심에서 징역 4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10년간 신상정보 공개·고지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취업제한,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억여원 추징 등의 명령도 그대로 유지됐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박사방 핵심 연루자 4명의 형도 확정됐다. 전직 공익근무요원인 ‘도널드푸틴’ 강모(25)씨와 전직 거제시청 공무원 ‘랄로’ 천모(29)씨는 각각 징역 13년을 확정받았다. 유료회원인 ‘블루99’ 임모(34)씨는 징역 8년형, ‘오뎅’ 장모(41)씨는 징역 7년형이 확정됐다.

 

이번 판결로 ‘n번방 3인방’으로 불리던 핵심 피의자 3명 중 2명에 대한 형이 확정됐다. ‘고담방’ 운영자인 ‘와치맨’ 전모씨는 지난 9월 n번방 사건 핵심 피의자 중에는 처음으로 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등 혐의로 기소된 전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다른 핵심 피의자인 ‘n번방’ 운영자 ‘갓갓’ 문형욱(24)은 2심에서 징역 34년을 받고 상고해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박사방 2인자 ‘부따’ 강훈(20)도 2심에서 징역 15년을 받고 상고한 상태다.

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제작해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 대화방인 박사방을 통해 유포한 조주빈 등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열린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가 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대법원도 ‘박사방’ 범죄단체로 인정… 유사범죄 엄벌 첫걸음

 

조씨 사건은 디지털 성범죄에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돼 확정된 첫 사례가 됐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수면으로 드러난 후 이들 텔레그램방을 범죄집단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지만, 검찰은 박사방 일당이 범죄를 목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수고비 등을 주고받았으며 내부 규율까지 만들었던 만큼 단순한 음란물 공유 모임을 넘어선 범죄집단이라고 판단했다. 조씨는 재판 과정에서 성착취물 제작·유포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박사방은 개인의 욕구에 따른 일탈이었을 뿐 범죄집단이 아니라는 논리를 펼쳤지만 1·2심 재판부는 물론 대법원도 이들이 범죄집단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중형을 선고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유사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엄벌 근거가 마련됐다는 반응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조은호 변호사는 “아무래도 하급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을 많이 참고하고 방향성을 따라가려 한다”며 “대법원이 조씨에 대한 중형을 확정하면서 사법부가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명백히 한 만큼 앞으로의 하급 법원 판결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디지털 성범죄가 더는 개인의 일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기도 하다”며 “범죄단체조직죄와 관련해 디지털 성범죄가 ‘범죄 목적’으로 인정된 첫 사례기 때문에 앞으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할 경우 이번 판례가 엄벌 근거로 중요하게 참고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판례를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 ‘범죄인지 몰랐다’, ‘피해자가 고통받을 줄 몰랐다’는 가해자의 변명은 더이상 법원에서 통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제작해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 대화방인 박사방을 통해 유포한 조주빈 등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열린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가 온라인 성착취 범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대위 “온라인 성범죄 심각성 법원도 인정… 이제 시작일 뿐”

 

이날 판결 직후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공대위는 “오늘 판결로 법원은 온라인 성범죄가 오프라인 성범죄 못지않게 심각하고 막대한 피해를 불러일으키는 중대범죄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디지털 성폭력과 성착취는 반드시 처벌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조주빈을 비롯한 박사방 운영자 및 연루자들의 형 확정은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을 ‘노예’로 칭하며 번호와 별명을 붙여 물건처럼 취급하고, 협박으로 얻어낸 성착취물과 신상정보를 유포·거래하며 가해했던 수만 명의 공모자들을 우리는 기억한다”며 “단 한 명의 피해자도 혼자 남지 않도록 끝까지 연대하고 힘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 피해자 기고 글 일부도 공개됐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가 대독한 글에서 피해자는 “디지털 성범죄는 범인이 잡혀도 피해가 끝나지 않는다. 피해 사진과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끝없이 퍼져나가고 판매자, 구매자, 시청자 등 잠재적 범죄자 투성이”라며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대한 끝나지 않는 세상의 조롱으로부터 언젠가 구원받길 희망한다”고 호소했다.